이탈리아 여행 준비, 다시 한 번 변곡점을 만들어보자

2022. 9. 13. 00:05Pensiero in Pensiero/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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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스트레스가 가득차서 평생 안하던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스카이스캐너에서 문득 70만원 대의 에어프랑스 비행기표를 봤다. 당시에는 비행기표가 100만원이 넘네, 300만원이 넘네 하던 때라서 이게 무슨 횡재냐 싶었는데. 그래도 70만원은 고민해야 하는 돈이었다. 며칠을 고민하고 결국 인생의 변곡점은 여행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결제했다. 

 

 

목적지는 지겹고도 그리운 FCO, 나의 로마.

unsplash, Spencer DavisHire

 

 

또 다시 로마로 향하고 있었다. 마음의 안식처인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로마가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드디어 찐 여행자의 마음이 생겨났다. 날씨 어플에 비 예보가 뜰 때마다 우울해졌고, 완벽한 동선을 짜고 싶었고, 자꾸 가고 싶은 곳은 늘어났다. 비행기 연장까지 알아보기도 했다. 더 있고 싶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들어서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어느 날엔가, 나의 사랑하는 동생과의 여행을 계획하던 중, 이곳이 나의 삶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여행과 삶을 분리시킬 수 있는 지혜가 나에게도 주어졌다. 

삶은 어디서든 흘러간다. 항상 그런 상황에 최적인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결국 물이라서, 흐르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가끔 댐의 물을 방류해서 일부는 흐르고, 일부는 다시 예상치 못한 때를 위해 가두어 두는 것처럼, 이번 여행은 방류고 평범하고 보통과 같은 삶은 댐에 가두어 둔 물이 되었다. 

 

 

이번엔 과연 괴테의 마음을 이해하고 올 수 있을 것인가. 

나폴리를 보면서 이걸 보고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로마의 출입문인 flaminio에서 쌍둥이 교회를 보면서 무엇인가가 새 생명을 받는 순간을 느낄 수 있을까. 

 

 

여행준비는 세 달 전부터 진행해왔다. 

여행가방은 무엇을 가져갈지 고민했다. 한동한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이 수하물 대란을 겪었다는 것을 보고 기내용 캐리어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휴식이 최고의 목표라서, 물놀이 도구를 잔뜩 샀다. 토스카나 지역을 돌아다니기 위한 차량을 예약하고, 대략 3주를 도장찍듯이 다니고 싶지 않아서 최소 2박 3일의 일정을 도시마다 준비했고, 온갖 맛집들을 구글맵에 찍어놨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스트레스가 극한일 때, 이미 다 준비해놓은 위의 준비과정을 다시 반복해서 진행했다. 

그래서 나의 여행 준비는 세 달 전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당장 출국이면서 아직 캐리어에 짐을 담지 않았다. 

 

 

이번엔 여름의 끝자락에서 남부를 무조건 맛보고 싶어서 도착하자마자 남부로 내려가는 계획을 짰다. 그 첫번째는 나에게 너무나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해수욕을 선사한 나폴리로 향했다. 피자도 유명하고 이탈리안 멸치인 Alici, 알리치도 유명하지만 나에게는 Bagno Elena로 더 유명한 그 곳. 수영복을 입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거대한 수박 튜브를 바다 한가운데 띄우고 즐거워 했었다.

 

그런 행복을 함께 나누고, 다시 그렇게 웃고 싶어 도착과 함께 바로 달려갈 예정이다.

피자도 하루에 다섯번씩 먹어야지. 튀김하고 해산물 스튜, 저렴한 하우스 와인을 마음껏 먹고, 약간 고삐풀린 사람처럼 다녀야지라는 다짐을 글을 쓰는 지금도 해본다. 진짜 나폴리 사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내는 시간이어라.

 

 

막상 삶이 그곳에 있을 때는 아말피 해안도로에서 숙박하는 건 꿈도 못꿨는데, 이번엔 그 해안가에서 눈뜨고 바다를 보고 싶었다.

반짝이고 싱싱한 바다. 바다 내음도, 끈적임도 없는 그 바다에서 수영하고, 그늘에 누워 낮잠자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바다를 배경으로 코딩도 딱 1시간만. 

 

 

참을인도 삼세번이라던데. 

이상하게도 나는 남들 다 좋다는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싫었다. 피렌체는 사람이 많고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은 도시라 항상 압도당했고, 베네치아는 바다둥둥섬이라서 교통수단이 온전히 나의 두 다리라는 점이 싫었다. 

 

피렌체는 이 번이 그 삼세번의 세 번째이다. 처음엔 멋모르고 갔고, 두 번째는 가족과 갔고, 세 번째인 이번은 어떨까. 엄청난 대가들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 건축의 도시, 맛의 도시인 이 곳에 반전 매력을 보고 애정을 느끼고 올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피렌체에 비해 라이벌 도시인 시에나가 더 좋다는 생각에 쐐기를 박을 것인가. 꽤 박빙의 (내 마음 속) 매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로마. 지긋지긋하지만, 늘 그리워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로마.

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그 볼거리들이 목표는 아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나를 위로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그냥 또 다른 추석이랄까. 고향집 어떤가 보러가는 느낌. 오히려 여기가 더 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동선을 짰다. 나폴리 - 아말피 - 피렌체 - 토스카나(시에나) - 로마

총 다섯개의 도시, 3주가 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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