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7. 00:29ㆍPensiero in Pensiero/여행
이탈리아 하면 따뜻한 마음씨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낯선 여행자에게 사실 이탈리아는 환대의 나라다.
물론 관광객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장기여행자(?)나 다름 없었던 나에게는 사람들의 정이 가득한 나라다.
포지타노에 가면 엄마 안젤라, 아빠 암브로죠, 나의 아저씨 뻬뻬가 있고,
폼페이에는 나의 친구 히로미, 살바토레, 소피아, 엘리아, 프란체, 알폰소가 있고,
나폴리(정확하게는 카스텔아마레)에는 내 최고의 친구, 어떤 수식어도 붙일 수 없는, il migliore amico, 토니가 있다.
로마에는 내사랑 사만다, 이모 알렉산드라, 초식동물 마르게리따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람들은 함께 일하면서 친구로 만났기에, 그래서 친밀감이 바탕이 되어 정을 나눴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참 신기하게도.
그 중 따뜻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던 도시는 바로 볼로냐, Bologna 였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로망을 가지고 있는 피렌체는 사람을 굉장히 힘들게 하는 도시다.
볼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관광객도 너어어어어무 많아서, 조금은 지치는 도시랄까.
피렌체만 가면 기본 5만보를 걸었으니, 그럴만도.
성당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우니, 볼게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지만 볼로냐는 다르다. 우선 사진부터 보자.
이게 볼로냐에서 가장 큰 중심 광장이다. 여유롭고 한가롭고, 왠지 젊은 사람도 많아 보인다.
실제로도 가보면 학생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도시 자체가 젊고 청춘드라마 스럽다.
그 이유는 1088년부터 볼로냐에 처음으로 대학교가 생겼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내에서도 볼로냐는 대학도시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볼로냐에서는 맥주를 와인을 콸콸 마셔도 될 것만 같다(응?)
그리고 취한채로 철학과 역사와 문화를 논하며 저 광장에 앉아있어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볼로냐에 갔을 때, 나도 학생들 틈에서 커피 혹은 맥주를 마시며 앉아 있었는데 다시 대학생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여간, 말하고자하는 것은 나에게 볼로냐는 로마나 피렌체 같이 거대한 것에서 벗어나 쉬는 장소였다는 거다.
추억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한 걸음 쉬어가는 곳.
그리고 그런 곳에는 꼭 맛있는 것이 함께 해야 한다.
매번 볼로냐를 가면, 한끼는 이곳에서 먹었다.
Drogheria della Rosa.
Drogheria 는 식품점을 말한다. 장미의 식품점이라는 뜻의 식당인데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매 타임 늦게 가면 자리가 없다.
그래서 보통 7시부터 그 집 앞을 서성거리면서 기다렸다 식사를 했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이 식당만 벌써 다섯번이나 다녀왔으니, 이정도면 사랑이라 해야겠지.
이 집의 시그니처는 쁘리모(탄수화물)로는 라자냐와 라구 파스타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콘도(본식)도 물론 충분히 맛있지만, 이탈리아에서 라구소스가 이렇게 맛있는 집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거기다 돌체(디저트)도 얼마나 맛있는지. 그래서 볼로냐에 도착하면 이 집에 예약전화를 거는 게 첫 활동이었다.
더불어 이 집의 특징이 있다면,
주인아저씨 에마누엘레가 여자들끼리 온 팀, 혹은 이태리어를 할 수 있는 팀에게 말을 걸고, 서비스를 내온다는 거다.
그리고 세번째 갔을 때, 아저씨가 날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 때는 동생이랑 갔는데(= 여자가 둘),
에마누엘레가 다가오더니 요새 아시아인들이 많이 온다면서, 너도 벌써 여기 몇번 오지 않았냐고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매번 온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번엔 동생이 이탈리아를 놀러왔는데 너희 집 음식을 꼭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볼로냐를 들렀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랬더니 에마누엘레가 웃으면서 그러냐고 아예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한참 동안이나 즐겁게 저녁을 먹으면서 와인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다음 에마누엘레에게 이야기 했다.
"Ci porti il conto, per favore" (영수증 주세요, 계산할게요.)
그랬더니 에마누엘레가 말했다.
너는 나의 특별한 손님이니, 오늘은 내가 대접하고 싶다고. 그러니 그냥 가도 된다고.
그리고 다음에 볼 때 네가 이태리어를 더 잘하게 되면 그때 계산하라며 due baci, 두에바치 볼뽀뽀를 해줬다.
이 후에도 갈 때마다 와인이며, 디저트며, 안티파스토까지 서비스를 듬뿍 내주기도 했다.
단, 남자랑 갈 때 빼고.
이런 일화 하나 만으로 볼로냐는 너무나도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
쉴 수 있는 곳, 청춘과 정열의 도시, 세계 최초의 대학이 존재하는 곳, 그리고 따뜻한 정이 느꼈던 곳.
그 곳이 나에게는 볼로냐다.
이탈리아를 다시 갈 수 있게 된다면, 볼로냐 Drogheria della Rosa를 꼭 다시 찾아 갈거다.
라구 파스타와 와인 한 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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