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8. 05:57ㆍPensiero in Pensiero/여행
어느 순간 입 밖으로 꺼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냥 라디오처럼 쏟아내는 말이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그 순간, 머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찌르르 전율이 온다.
사람은 인생의 변곡점을 여러번 갖는다.
그리고 그 변곡점을 찍는 연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책, 예술, 여행.
즉 말하자면, 경험이다. 그것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발전한다. 퇴보라고 생각해도 그 안에 발전이 존재한다.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면, 한 쪽 구석에 베르니니라고 하는 바로크 시대 조각가가 만든 알렉산데르 7세의 무덤이 있다.
알렉산데르 7세의 무덤에는 한 중간에 해골 하나가 모래시계를 들고 나오면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시각각 다가온다고 이야기한다.
즉, 메멘토모리(Memento Mori),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말을 전달하고 있다.
교황이든, 일반적인 사람이든, 누구에게든 죽음은 다가온다.
죽은 자의 무덤에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야기는 참 아이러니하지만 반면에 교황에 무덤에는 꽤 잘 어울리는 문구다.
이런 사람도 죽었으니, 너도 곧 죽을 것이고, 그러니 어떻게 죽어갈지를 고민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이제 어느정도 나이가 드니, 여기저기에서 부고가 들려온다.
그중에 가장 슬픈 부고는 내 가까운 사람의 부고지만, 가장 안타까운 부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야 하는 부고다.
어떤 이의 죽음이든 마음속에 아쉬움과 후회, 슬픔의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인생 참으로 별거 없구나’라는 조소가 어딘가에 슬며시 들어찬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니 어떻게 죽어가야 할 지 고민을 하게 된다. 마음 한 켠에서 조소와 함께 걱정이 스물스물 피어난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죽음으로써 비로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결론이 난다.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 쓰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야 이 사람이 어땠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데 함께 사는 순간에는 그 사람을 정작 잘 모른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지금이 어쩌면 내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그래서 메멘토모리(Memento Mori)와 함께 오는 구절이 있다.
바로 카르페디엠(Carpe Diem).
영어로는 Seize the day로, 이탈리아어로는 Colgi il giorno로 해석한다. 지금을 즐기라는 해석보다는 ‘현재를 살아라’라고 해석하고 싶다.
방점은 즐기다 혹은 살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의 핵심은 지금과 현재에 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이 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인가.
그렇기에 저 두 문장은 사실 하나의 문장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니 너의 인생을 현재에 두고 살아가라는.
한 때는 사람들이 타투로 새기던 이 문구가, 그냥 싸이월드의 대문에 걸려있던 별거 아닌 이 구절이
이제서야 마음에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삶의 고민으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나의 오늘을 보낼 것인가. 하루의 끝에서 다시 묻는다.
2019.08.17.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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