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는 왜 두상조각이 많은가.

2019. 8. 28. 06:19Pensiero in Pensiero/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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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의 끼아라몬티 박물관(museo chiaramonti)에 가보면,

참으로 의미 없이 두상만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많다.

 

왜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만드는 데 이렇게도 집착했을까.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셀카 혹은 영어로는 selfie, 셀피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서 ‘나’를 남기려고 한다. 

 

어떤 욕망이 그렇게도 얼굴을 남기는 행동을 이끌어 낸다는 말인가. 

 

심지어 그렇게 남긴 ‘나’의 얼굴이 꽤나 괜찮아 보이면 그 모습을 전시하고 사랑하게 된다. 나르시즘의 완전체가 아닐까. 

그렇지만 애초에 왜 우리는 나의 모습을 남기는 것일까. 

 

인간은 언제나 기억되기를 원한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는 것이 인생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목적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사람은 기록을 하는가,

왜 자식에게 주니어라는 이름을 남기는가,

왜 묘비에 들어갈 마지막 말을 고민하는가 

 

등등의 질문에 대하여 답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것에 집착하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나의 모습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려고 노력했을 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대대손손 나를 기억해줄 사람을 남기려고 했을거다. 

 

 

그게 전자는 조각으로 남았고, 후자는 자식으로 남았다. 

그러나 조각은 어쩌다 잘하면 몇천년을 살아남아 박물관에 전시가 되었고,

자식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범인들도 사라졌다. 

 

 

때로는 이름으로 남기도 했다.

그들 중에서는 누구나가 인정할 만한 권력자라거나, 모험가거나, 선구자라면 이름으로 전승되기도 했다. 

그것은 장군이자 왕인 알렉산더이기도 하고, 하층계급이자 검투사인 스파르타쿠스이기도 하다.

 

 

끼아라몬티 박물관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생각이 스친다.

조각이 몇 천 년을 버티는 것은 사실상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렇기에 저들이 저렇게 살아남아 있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쉬워졌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사라지지 않는 장이 생겼고, 뭐든 올리면 영원히 기록이 된다.

48미터짜리 황금동상을 세우지 않아도, 이제는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을 손쉽게 채울 수 있는 순간이 왔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photo by Jack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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